단원고의 별들, 기억과 만나다

416기억저장소 도언엄마 윤희엄마의 베를린간담회 기록입니다.  ( 기록 : 김연화 )

뉴스를 많이 보고 SNS를 하더라도 알지 못하는 소식들이 많습니다. 세월호 소식을 언론을 통해 들어도 언론이 주목하지 않는 내용들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독일에 있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고 한국에 있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416기억저장소라는 이름이 생소하실 수도 있을텐데요. 이에 대한 자세한 말씀들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세월호 선체 인양, 416기억저장소, 안산 416안전공원 건립 등 이슈가 많은데 간담회에 참석하지 못한 분들께서도 아실 수 있도록 어머님들 말씀을 최대한 옮기고자 했습니다. 덕분에 내용이 많습니다(스압주의).
바쁘신 분들을 위한 한 줄 요약: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기억해 주세요”

<단원고의 별들, 기억과 만나다>

“이별할 시간이 있었다면 덜 아팠을까? 잘 다녀오라고 했는데…”

어머님들의 베를린 방문 일정의 마지막 공식 행사로 교민과의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천 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멋진 노래로 간담회가 시작되었는데 시작하자마자 간담회장이 눈물 바다가 되었습니다. 노래에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힘이 있었을까요. 평소에 잘 울지 않는다는 윤희 어머님와 항상 에너지 넘쳐 보이던 도언 어머님이 보이신 눈물에 간담회장에 모인 모두가 같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실 베를린에서 세월호 가족들을 모신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그동안 베를린을 방문하신 가족분들이 세월호에 대해 말씀하실 때 항상 담담한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매체를 통해 들었던세월호와 관련된 수많은 소식들에 우리는 참을 수 없는 슬픔과 분노의 눈물을 흘렸지만 의연한 가족분들 앞에서 차마 눈물을 보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두 어머님의 눈물에 우리도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눈물을 흘리면서 느꼈던 감정은 고통이나 슬픔이 아니었습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모두가 함께 하는 공감이 우리 모두가 눈물을 흘리던 그 공간에 가득 찼습니다. 그래서 눈물로 시작한 간담회는 슬픔도 분노도 아닌, 공감과 유대로 지속되었습니다. 모두가 함께 느꼈던 그 마음, 그 순간은 우리에게 하나의 경험이 되어 우리 몸에 기억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

교회의 날(Kirchentag) 행사로 베를린 한인 교회에서 세월호 참사로 별이 된 단원고 학생들의 어머님들을 모셨습니다. 416기억 저장소에서 소장님 도언어머니와 운영위원 윤희어머니가 유럽에 오셔서 지난 9일간 베를린에 머무셨습니다.

교회의 날 행사 슬로건은 “Du siehst mich”였습니다. 우리 말로 해석하면, 당신이 나를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에 대해 어머님들을 초대하신 한인교회 목사님께서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바로 보게 되었으나, 바로 보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돌봄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아래는 간담회에서 어머님들께서 전해주신 말씀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세월호의 최근 상황 소개와 지난 3년간의 시간에 대한 질의응답>

가족협의회의 어머님 아버님들은 그동안 정부의 세월호 인양 절차에서 배제된 채, 별도로 세월호가 가라앉은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동거차도에서 24시간 인양과정을 감시하였다. 그러나 세월호 인양작업은 주로 밤에만 진행되었고, 그나마도 동거차도에서는 배의 뒷부분만을 볼 수 있어서 어떤 작업이 진행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해수부는 인양 후 미수습자 수습 대책 없이 일단 인양을 진행, 가족협의회는 이전부터 인양에 대비한 선체조사위원회의 구성을 정부에 요구하였으나 선체조사위원회는 세월호를 인양하고나서야 구성되었다.

현재 세월호가 있는 목포신항에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머무르면서 유류품 확인 작업을 하고 있으며, 인양된 선체에 대한 수사는 현재 1차 수색작업이 거의 끝나가며 이후 2차수색을 진행할 계획에 있다.

지난 정부를 상대로 민사소송이 진행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2기를 출범하고 특검을 진행할 것을 약속해 왔으며, 대통령 당선 후에도 이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일단은 이러한 작업들이진행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전정원의 대통령기록물이 목록까지 포함하여 봉인된 상태라 우선 이에 대한 봉인 해제가 필요하다.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세월호 광장은 재정비에 들어간 상태이다. 이전에 설치되었던 세월호 광장 부스는 시민 봉사자들과 함께 가족들이 반별로 순번을 돌며 부스를 지켰으나, 현재 대다수의 가족들이 세월호가 있는 목포신항에 머무르고 있어서 시민들이 부스를 지키고 있다.

가족들은 지난 3년간 거리에서 지내면서 지병이 생기는 등 몸이 좋지 않은 상황. 특히 거리에서 시위해산을 요구하는 경찰의 스피커 소리를 지속적으로 들은 터라 많은 가족들이 난청이 생겨 잘 들리지 않는다. 이외에도 찬 바닥에서 밤을 지새우는 날들이 많이 생기면서 몸의 구석구석 아픈 곳이 많이 생겼다.

세월호에 대한 좋지 않은 얘기들을 들을 때보다 더 마음이 아플 때에는 빨리 잊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만날 때이며 특히 가족이나 친지, 가까이 지내던 이들이 그런 이야기를 할 때가 가장 마음이 아프다. 어머니가 나에게 어서 잊고 건강도 챙기고 남은 가족들을 보며 살라고 말씀하실 때,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이라 이해하지만, 나는 또 내 자식을 잃었으니 그렇게 되지 않는다. 첫째 아이의이름으로 나를 불렀는데, 어느 순간 사람들이 나를 둘째 아이의 이름으로 부를 때, 첫째 아이가 이렇게 쉽게 잊혀지나 싶어서 마음이 아팠다. 언제까지고 계속 첫째 아이의 이름으로, 첫째 아이의 엄마로 불리고 싶다.

많은 분들을 만나면서 힘도 많이 얻었다. 특히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 어른들이 잘못 살아서 미안하다고 말씀해주실 때, 그리고 그러한 말씀이 변화로 이어질 때 가장 가슴에 와닿는다.

참사 초반에는 많은 분들이 아픔에 같이 공감해주셨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유가족”으로 분류되면서 힘든 일들이 많이 생겼다. 한국에서는 ‘유가족은 착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유가족은 웃어도 안되고, 화를 내도, 욕을 해도 안되는 사람들로 분류되어 이에 맞는 행동을 기대한다는 것이 가족들을 더 힘들게 한다.

종교가 있던 가족들 중 종교를 더이상 찾지 않게 된 분들도 있다. 신이 있다면 우리 아이들을 왜 데려갔는가, 질문을 해도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교회나 성당, 절에서 다른 분들께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동시에 안산 분향소에서 계속 함께 있는 부스도 종교 부스다. 힘을 함께 나눠주는 종교인들도 많이 있다.

 

세월호 참사 발생 첫 날부터 전문가와 시민들이 참사를 기록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후 세월호네트워크와 시민기록위원회 등으로 나뉘어 참사기록 작업이 진행되다가 2015년 “416기억저장소(이하 기억저장소)”로 통합되어 운영되고 있다. 기억저장소는 세월호와 관련한 모든 기록을 남기고 이를 통해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변화로 이어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의 기억저장소는 2기로 유가족, 시민단체, 전문가(구술전문가, 역사학자 등)들로 운영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으며 실무진이 함께 하고 있다.

기억저장소는 기록 투명성을 위해 정부지원을 일절 받지 않고 있다. 처음에는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으로 시작하였으며 2년동안 실무진 1명의 인건비, 전시관 및 숙소 대여 비용을 지원 받았다. 아름다운재단 지원은 2년 기간으로 한정되어 지난 2016년 12월 31일 지원이 종료되었으며 현재는 시민들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기억저장소에 있는 기록 목록은 침몰당시 희생자들이 보낸 메세지, 참사 현장의 자료와 아이들 개인의 자료, 유품, 단원고 교실에 있는 자료 등이 포함되어 있다. 기억저장소의 기록은 요청시 자료로제공한다. 현재 기록들은 분향소 옆 컨테이너에 임시보관중인데 컨테이너에 항온항습 기능이 없어서 보존에 어려움이 있다.

*기억저장소 홈페이지에는 (1) 304명의 모든 기록, (2) 부모, 형제자매, 지인들의 삶의 기록, (3) 함께한 시민들의 사랑과 진실의 노력의 기록, (4) 304명의 꿈을 부쉈던 사람들의 행적 기록을 정리하고 보존한다고 밝히고 있다.

기억저장소의 업무에는 유품의 세척 및 보존처리도 포함되어 있는데 아이들의 유품을 부모님들이 직접 세척하고 보존처리했다.

세월호 참사는 단원고 수학여행중에 발생했다. 수학여행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학사일정에 포함된 것으로 수업의 연장선 상에 존재한다. 그럼에도 단원고 교실을 그대로 존치하지 못했다. 현재 교실의 모든 물건은 안산교육청으로 임시 이전한 상태다.

세월호 인양시 해수부에서는 유품의 보존처리에 대한 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기억저장소에서 부모님들이 유류품 보존방법을 직접 전국을 돌며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세월호와 함께인양되는 유류품들은 3년을 바닷물에 잠겨 있었기 때문에 별도의 보존처리를 하지 않으면 금새 부식되어 보존할 수가 없다. 최소 3개월의 탈염과정을 거쳐 그늘에서 오랜 기간 건조되어야 한다. 이러한 의견을 해수부에 제시하였으나 비용 등의 문제로 해수부는 3일의 탈염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진행하였다. 현재 목포신항에 에어컨만 설치된 컨테이너를 두고 유품들을 이곳에 임시보관하고 있다. 유류품 세척과 보존처리 작업을 부모님들이 수행하고 있으며 목포시에서 유류품 6개월 공고 후 안산으로 가져오게 된다. 이후 4.16기억저장소에서 2차 보존처리를 진행 할 계획이다.

기억저장소의 기록물들은 416안전공원이 건립되면 그곳에 전시할 예정이다.

416안전공원 건립은 특별법에 명시된 사항으로 지난 3월까지 부지 선정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6월로 결정이 미뤄진 상황이다. 유가족은 분향소 근처에 위치한 화랑유원지 내 공터에 안전공원 건립을 원하고 있으나 주변 지역의 재개발 조합에서 반대를 하고 있다. 이에 가족협의회에서는 5월 한달동안 집중 서명운동을 실시하여 시민들의 힘을 모으고 있다. 416안전공원 건립을 위해 유가족과안산시민으로 구성된 안산추모협의회를 구성, 단원고를 다녔던 아이들이 거주했던 지역을 중심으로 경청회를 진행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  「4.16 세월호 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  36조 국가 등은 4.16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추모와 해상 안전사고 예방교육을 위하여 ① 추모공원 조성, ② 추모기념관 건립 ③ 추모비건립 ④ 해상 안전사고 예방훈련시설 설치 및 운영 사업을 시행하여야 한다.

416기억저장소는 현재 기록물들의 장기 보존을 위한 항온항습 기능이 있는 수장고를 갖추지 못한 문제가 가장 크다. 그럼에도 기억저장소에서는 단원고 416 기억교실 교육 프로그램으로 <기억 순례의 길>을 진행하고 있다. 304라는 숫자가 아닌 희생자들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기억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이들을 기억해 주시길…”

———

416 기억저장소 후원

“잊지 않겠습니다” 그 시작은 기록과 기억이며, 행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http://fund.416memory.org

<안산 416안전공원 건립 서명>

누군가에게는 기억을 떠올리기조차 싫은 끔찍한 참사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기억하려고 노력할 때에 다른 참사를 막고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eU09i4L5ApFkHgTIyvvkSGFD5BIALXR4YURDtuSXNXFWYmGA/viewform?c=0&w=1

<이름을 불러주세요>

희생자 305명은 305명의 삶이었고 305개의 꿈이었습니다. 이들이 숫자로 남지 않도록 이름을 불러주세요.

(* 305명은 구조후 수학여행 결정에 대한 자책감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강민규 교감선생님을 포함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ot5xW4Sudc


그외 애피소드

베를린 교회의날 박람회장에서 생긴일..

” 피부가 까무잡잡한 십대 후반의 소년들이 와서 세월호에 대해 묻습니다. 열심히 듣더니, 어머님들과 허그를 해도 되겠냐고 묻네요. 꼭 안아드리고 싶다고. 시리아에서 온 소년은 그렇게 세월호 어머님들과 정을 나눴습니다. 서로 다른 아픔이 조금씩 치유되는 과정, 우리가 연대하는 이유가 아닐까요.

416기억저장소에서 오신 도언어머니와 윤희어머니가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교회의날 행사에서 세월호 및 안산 추모공원 건립 캠페인을 진행하고 계십니다. 종교개혁500주년 기념으로 열리는 행사라 세계 곳곳에서 정말 많은 분들이 참가하셨는데, 모두들 귀기울여 들어주시고 캠페인 서명에도 흔쾌히 동참해주십니다. (그동안 거리캠페인에서 할때의 몇 달 치 서명 분량이 순식간에!)
방문해 주신 분들의 손목에 어머님들이 한 분 한 분 기억 팔찌를 끼워주시고, 가방에도 노란 리본을 달아주십니다. 이렇게 연대의 마음이 퍼져서 세계 각국에서 세월호를 기억하게 되겠죠? 옆에서 제 마음도 같이 따뜻해집니다.”

” 윤희어머님과 도언어머님이 독일 교회의 날 두 번째날을 맞이해, 오늘도 베를린 메세에서 이 곳에 모인 전세계인들에게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진실을 밝히는 일에 함께 하자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체코에서 온 14살의 친구는 친한 친구 두명과 교회의 날에 참석하여, 우연히 세월호 부스에 들려 세월호 참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세월호 참사에 관해 조용히 듣던 친구는 또박똑박 서명을 하고 노란 팔찌와 리본은 챙겨, 멀찌기 기다리던 친구들에게 세월호를 설명해주고 부스를 떠났습니다.
두 시간 뒤쯤, 다시 나타난 그 친구는 세월호 영어 안내문과 노란 팔찌, 리본을 더 챙겨 가도 되냐고 물었습니다. 당연하지요 하며 고맙고 궁금한 마음에 왜 더 챙겨가는지 물어봐도 되느냐 했더니, 오늘 돌아본 부스 중에 세월호가 내 마음에 가까이 와닿은 사건 중 하나였고, 돌아가서 친구들과 함께 세월호를 기억하고 기도하기 위해서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친구들과 행사장을 나가는 그 친구를 보면서, 정말 이 친구라면 돌아가서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세월호를 기억하며 진실이 밝혀지기를, 미수습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살아남은 가족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길 기도할것이라는 믿음이 들었어요. 혼자 울다가 들켜서 민망한, 그렇지만 마음이 찡한 하루였습니다. 한국에서 많은 자료들과 물품들을 챙겨오신 두 분의 어머님께 감사드려요.

* 교회의날은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세계적 행사로 한 번은 가톨릭, 한 번은 개신교 중심으로 행사가 진행됩니다.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독일 베를린에서 개신교 교회의 날이 개최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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